아내가 나에게 가끔 들려주는, 시부모를 모시는 불평 이야기를 들을 때는 뾰족한 바늘 끝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손과 발과 머리와 몸뚱이가 사분오열되는 느낌이 들지요.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더한 고통이 따르므로 분노를 부추기는 감정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아내의 불평을 듣고 있으면 참 가관입니다. 그러나 그게 이해가 되기 때문에 나는 그녀와 같이 욕하는 마음이 되어주다가도 자기 분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도 불평을 다른 데서 풀지 않고 나한테 쏟아내는 게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나는 아내의 시댁의 역사와 사건 사고와 세월의 이유를 몸소 경험하고 살아왔으므로 아내의 시댁 사람들의 기이해 보이는 행동에도 분노가 일어나지 않고 긍휼한 마음이 듭니다. 아내의 시댁 사람들은 가난하고 성격이 온순합니다. 표현이 서툴지만 마음은 먼저인 사람들이지요. 시누이들의 한창 성장기였던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군부독재체제에 있었고, 경제기반이 빈약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에 태어난 분들은 시댁 사람, 친정 사람 할 것 없이 대부분 개인의 희생과 헌신이 요구된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장기에 고생을 많이 했고 대학교육은 꿈도 꿀 수 없는 삶을 살았죠. 도시빈민의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꽃다운 젊은 시절을 공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아내의 시누이들은 한송이 국화꽃과 같았던 남동생의 학비를 지원했습니다. 자기 꿈을 펼쳐보지 못한 한이 깊겠지만 내색하지도 않았구요... 착하게만 살았던 아내의 시누이들은 결혼 생활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시누이들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당당히....... 성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누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바쳐, 고생해서 뒷바라지한 희생과 헌신에 남동생은 덕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모지리... 찌질이 남동생은 늘 미안하고, 면목이 없지요. 그러므로 나는 아내의 시댁 사람들 누구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아내는 똑부러지게 말 못하는 남편이 답답하겠죠...
그러나, 그 긴 세월의 히스토리를 아내에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를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사정까지 아내가 떠 안으며 감당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아내와 결혼하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은 .. 사람은 똑같이 경험한 사실을 놓고도 차원이 다른 해석과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공감이라는 개념일랑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요. 그것은 마치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계급장도 없는 일반인 3류 정치가의 주장만큼이나 끝이 없는 이야기이고 프레임도 다른 사안일 뿐입니다.
아내도 나와 같은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 속에서 자라오긴 했어도, 시댁의 낯선 환경으로 인해 절벽같은 문화충격을 많이 경험시켜주었을 겁니다. 왜 그런 상황에 그렇게 밖에 안하지? 반찬 맛은 또 왜그래? 말투도, 대화 중 사용하는 단어조차도 거북했을 거예요. 우린 서로 늘 현재 진행형의 이해와 용납이 필요합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정치와 사회, 경제적 환경을 불문하고, 남편이 먼저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진리가 경험, 상황, 피치 못할 이유 위에 있습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와 부부싸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교적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무한히 받아야하는 존재입니다. 이 말이 서운하게 들리는 남자들은 하나님한테 가서 따져 보시고, 혹시 들은 이야기가 있다면 저에게도 들려주세요.(물론 배웠다고 성경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여우처럼 살기도 했고, 때론 눈칫밥의 밥맛을 아는 미식가였고, 때론 예수님처럼 사랑의 바다가 되어 비난과 증오의 화살을 맞기도 했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 무아의 경지를 오가며 비공개 블로그에 욕을 쏟아내는 어설픈 소설가이기도 했으며, 무릇 홀로 산에 올라 나무에게 말하고 계곡물에 눈물 담그며 하늘에 하소연하고, 바위 끝에 서서 호연지기(浩然之氣: 넓은 자연을 보며 부끄럼 없는 용기)를 외치며 약발 없는 대장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배고픈 사자를 등 뒤에 두고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검투사들처럼 누가 죽어야 끝이 나는 게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나는 미안하기만 합니다.
아내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아내의 시누이에게도, 부모님들께도...
내 자신에게도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미안한 인생을 살아야할까')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 될까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까요?, 아니면 신앙 일기 간증으로 승화시킬까요,
그냥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끝내는 성토로 마무리를 할까요...?'
전쟁 중에도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길을 걸을 땐 걷기만 하고, 밥을 먹을 땐 먹기만 하고, 전쟁을 할 때는 목숨 걸고 싸우기만 합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뿐입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이야기)
나는 오늘을 삽니다.(오늘 이 순간만큼은요....)
오늘은 달콤 쌉쌀한 커피 한잔이 답이 되겠습니다.
미안한 것은 사랑이 아니랍니다.
언어를 바꿉니다.
사랑합니다. 가족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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