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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구의 아카이브

예술은 삶이고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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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30~40년 전 학교에서 배웠던 예술과 지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교통 및 기술의 발달과 속도, 복제대량생산, 인터넷 관계망, 미디어, 인공지능 등으로 사물의 세계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작품은 미술사적인 어떤 사상을 따른 것도 아니며, 지성적인 쇼크를 줄 만한 작품도 아닐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진솔한 삶의 기록이기를 바랄뿐이다.

​나는 미술학원조차도 다녀 본 적 없지만, 학창시절에 미술상장과 한때 유행했었을 동으로 만든 메달상을 자주 받았다. 고등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했지만, 몸이 많이 아팠고, 대학은 미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중국어를 전공했다. 그 후 생계를 위해 생업으로서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어도, 중학교 다닐 때부터 품어 왔던 꿈은 버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도 역한 유화물감 기름냄새가 좋다. 
그것은 내게 기름냄새가 아니라 순수했던 중고교시절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고,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향수같은 것이었다. 어깨 너머로 이 세계를 곁눈질하며 살아왔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살아온 내력을 생각해보니 우연같기도 하고 확실한 필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웠던 지난 여름에 최악의 사업실적을 내었다. 
나는 일로 만들어진 존재인가? 일이 없으니 내 존재가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에 진지하게 맞서,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런 와중에 개인전은 왜 할까?
예술은 뭘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종교와 철학은 이해가 가지만 예술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인생의 깊은 고민과 절망의 바닥에서 느끼는 한계상황은 움켜쥔 자아의 손아귀를 풀게 하는 것이었나 보다. 예술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삶의 흔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삶이고 역사다. 
미술사에 소개된 다양한 사상과 현대미술의 초월적인 해체가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예술은 인간의 고유한 삶의 영역 안에서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삶이 가장 진실할 때 예술에 가깝고, 작품으로서 빛이 난다.
시간내서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작품이고, 존재가 작품이었다. 
그러므로, 삶은 존중받아야 하고, 작품으로서의 인생은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신으로부터 받은 재능이 있다면 나누는 것이 그 뜻에 맞게 쓰는 것이다.
사람은 함께 나누며 공유하도록 지음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일부를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비로소 무거운 겉옷을 벗어던지고 신작로로 걸어 나온 기분이다. 눈에 보일락말락한 겨자씨앗도 나중에 나무가 되어 쉴 그늘을 만드는 것처럼, 썩어서 파묻혀 버릴 뻔했던 내 씨앗은 어떤 나무가 될지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마치 풀리지 않는 현실의 사슬과도 같았던 삶의 굴레에서, 그것을 푸는 열쇠 같았던 세 분, 고정수 선생님, 정옥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아내에게 인생을 두고 고맙다. 

--------->  2018년 11월  첫 개인전 때 작성했던 인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