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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구의 창작 갤러리

영혼의 자유와 포효

영혼의 자유와 포효(Freedom of Soul, and Roaring)

사이즈 : 가변설치

재료 : PVC foam board

제작년도 : 2021년

작품소장처 : 오케이에프(주) 

 

영상이 진행되면 딱딱한 조각들이 부서지고, 벗겨지고를 반복한다. 부서지고 벗겨지며 모난 조각들이 원만해지는 성숙에 이를 때에도 끝은 아니다. 영혼의 향방은 영원한 것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과의 외관상 차이는 없다. 다만 움직이지 않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차이로 느껴졌다. 움직임 즉 생명의 동력은 무얼까?
전기 스위치가 내려가면 전깃불은 꺼지지만 전기는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살아있는 생명도 목숨이 다하는 날에 이르게 되더라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영상은 실제로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림자는 가끔 영혼에 비유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play되는 그림자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실체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도록 기획되었다. 영혼의 갈망이 영상의 동적인 그림자와 함께 더욱 드러나 보이기를 원했다. 겉모습에 구애 받지 않고, 인생의 굴레에 구속당하지 않은 자유롭고 건강한 ‘영혼’이다.
2018년 개인전 전시 때 선보인 설치작품은 “목적을 향한 내달음”이었는데, 이번 2021년에 새롭게 선보인 영상과 그레이하운드 설치 작품은 일상으로부터의 변화와 영원한 희망을 힘있게 추구하는 “영혼의 자유와 포효”로의 전환이다.


 

작품의 스토리 구성(1분30초)
#1.불이 켜진다. 스포트라이트처럼 조각을 비추는 조명, 벽에는 조각의 검은 그림자가 비춘다.
#2.깜빡이는 불빛, 조각이 벌어지며 박동하더니 벽의 그림자는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3.앞쪽으로 뛰는 조각, 몸을 덮고 있던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며 각진 모습이 아닌 온전한 곡선 형태가 드러난다.
#4.심장 박동처럼 조각들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맹렬해진다. 마침내 도약하는 그레이하운드, 조각이 전부 떨어져나가고 실체가 드러난다.
#5.그 순간 시간이 멈추고, 떨어져나간 조각들이 다시 붙으며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유현빈과 함께]

인생이 계획적으로 되지 않는 것 중에 사람의 만남도 그러하다.

생각지도 못한 적극적 관람자 유현빈 군을 알게 된 것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는 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세계 안에 스며든 영감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수차례 만남을 통해 기획, 기술적 지원 및 설치까지 동행하며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스토리구성, 건축, 그림자, 내면의 성장, 인생과 인격, 미래, 진로, 희망, 신앙, 철학, 미디어, 영화, 신념, 관계, 사랑, 예술, 현대미술, 음악... 심지어 찌질한 이야기들까지...

세대가 다른 연령대일지라도 작품을 통해 공감하고 삶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작가로서 큰 기쁨이었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 담긴 삶의 깊이이다.

 




2022.1.7 개인전 방문한 한 가족이야기

어떤 가족관객이 나의 개인전 전시를 다녀갔다.
지인의 소개로 방문했으므로 식사대접을 받았다. 처음 만난 사이에 식사를 하려니 편치가 않았다.
몇마디 인사를 주고 받고 관심사 될 만한 이야기들을 꺼냈지만 대화가 쉽게 이어지질 않았다.
식사를 서둘러 끝낸 것 같아.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다소 공격적으로 들리는 말투가 성격인지 감정인지 혹은 성향인지... 혹시 대화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질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좋은 표정으로 대해야 할테니까.

식사 후 각자의 자동차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갤러리로 이동했다.  가족관객들과 함께 전시장(뮤직포레스트)으로 와서 차를 마시며 몇마디를 주고 받았다.
사모님은 주로 은혜받은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신앙의 핵심내용과 관련하여 .. 나는 그림 감상하는 방법에 연결지으며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했다.  아프리카 노예가 팔려 나갈 때 술과 바꾸었다는 역사적 진실을 담은 작품을 소개했는데 이런 작품에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 작품도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모님은 어린시절 미술교사로부터 상처받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인격적인 상처가 깊었던 것이다. 어쩐지 다소 공격적인 말투는 아마도 그 때 받은 상처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고 짐작이 간다. 감상할 때 화폭 안으로 들어가는 이야기, 완전 흑색 캔버스를 기도실에 설치했다는 이야기로 설명을 끝냈는데....
사모님은 거의 설교와 같은 수준의 대화를 하시더라. 다소 일방적인 대화였다는 말이다. 대화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작품을 설명하려고 전시실로 장소를 이동했다.

그레이하운드 설치작품을 한참 설명하는데 갑자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사모님이 흐느끼고 있다.
'인생이란 때로 처절하기도 하지.'
이 작품에서 억눌린 감정을 말할 때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을 한다.
삶은 항상 긴장되어 있고, 견디는 일로 가득하니까...
우리는 억눌린 자아를 발견하며 괴로워 한다.
이런 괴로움이 그림이든 조각이든 예술작품으로 표현될 때 공감을 얻는 것 같다.

작품의 설명은 내 본위로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경로로 해석을 하더라.
조각이 떨어져 나가며 흩어져 흰색 매끈한 몸이 나오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마치 제물처럼 검게 그을리며 불에 탄 자신의 모습이 매끈한 몸으로 승화된 것이다.
아...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구나...

하나님이 진정으로 의식이 되는 순간에는 자기 자신이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는 경험을 한다.
자신의 적나라한 실체가 하나님의 위로로 치환되는 순간 정서적 치유와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다.
나는 이런 상황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좋은 말로도 감화되지 않는다.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그 사랑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다.

나는 상대와 대화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최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문장의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처음 식사할 때의 약간 경직된 것 같은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워졌고, 호감으로 바뀌었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인사를 건네받았다.
충분히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진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