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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기록/2020년

알아서 크는 아이들

예쁘기만 했던 어릴적 우리 아이들.

어릴 때는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래 살고 보니 지금은 사람들의 덕을 크게 보고 살고 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무너지는 자존심에 마음이 크게 상할 수밖에요... 

이런 마음을 섣불리 내색했다가는... 유치해집니다.

 

팔당댐 근처 강가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식구들이 모두 갇혀 살다 보니 피차 민낯이 드러납니다. 

밖에서 일하고 저녁때쯤 귀가할 때는 적당히 괜찮은 척, 멋있는 척은 다 했는데...

게다가 손에 먹을 것이라도 들려 있는 날이면 그날의 아빠는 최고였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많이 커서 먹을 것으로는 유인이 안됩니다.

요구하는 돈의 액수와 단위도 꽤 커졌지요.

 

돈도 없고, 성격도 별로 안좋고...,

지금은 밑천 다 드러나 내세울 게 없고, 가려지지도 않습니다.

날을 거듭하면서 자존심이 곤두박질칩니다.

 

때때로 겉모습만큼은 어찌나 겸손한지... 

그러나 속마음 타 들어갈 때가 한두 번도 아니고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린시절로 돌아간 <놀이와 일탈>.  저 무섭게 생긴 늑대 탈을 쓰고 나무칼을 휘두르면 대장부 혹은 산적의 두목이 부럽지 않다. 

욕하고 싶은 날이 며칠 째...  

이유도 명확하지 않고, 혹시 이게 우울증인가 싶어 스스로 마음을 달래고, 애써 달콤한 맛 즐기고 삼키며 

나날이 거듭되어 갈 때... 튀어나오는 거북알 같은 허연 배는 절망감을 더합니다. 

 

어디선가.. 들은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군대서 캄캄한 밤에 경계근무를 설 때 한 곳을 지나치게 주시하면 마치 그 어둠 속에 뭔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답니다. 그럴 때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다시 바라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나친 집중은 편견에 빠지기 쉽습니다.  지나친 걱정은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이럴 땐 굳이 시선을 돌리는 것이 현명할 때가 있습니다. 

 

동생을 모델로 카메라 테스트 중

시선을 돌려보니 엄마의 엄한 양육방식으로 인하여, 그렇게 걱정되던 다친 마음 같았던 초등 1년생이었던 딸이 이제는 다 큰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합니다.

귀여운 외모에 요즘엔 화장도 제법 익숙하게 하고 다니고.. 

엄마와는 전에 비하면 더 많이 친구사이가 되어가고 있고, 때론 일상의 조언도 하고, 

가끔 엄마의 말을,,, 나의 말까지도 무시하기도 합니다.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고등학생 아들

얼마 전 가족의 일상을 더 행복하게 살자는 의미로 각자 지켜야 할 의무와 기준에 대한 고등학생 아들의 논리적인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기도 하면서 아빠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기도 했습니다. 

 

'언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컸나... '

 

오늘은 딸이 친구들로부터 받은 생일선물 중 티라미스 케이크를 밤 11시가 되어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먹으면 살찐다는 엄마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고 쌀쌀맞은 엄마의 기세를 부드럽게 상황 정리하며  넘어갑니다.

 

'나는 괜한 걱정을 하고 살았던 것일까..'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걸 보니 그동안 노심초사 바라보던 내 눈은 뭐였을까...?'

내 손이 닿지 않으니... 또 걱정만 하고 맙니다.

 

딸이 생일선물로 받은 아로마 향초 ///  가족기도모임 때 얹은 손

노력과 성실을 일상의 기치()로 삼고 열심히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인생의 전환점에 얼마만큼이나 기여했는가를 따져본다면 내 노력은 그렇게 결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별로 노력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았죠.... 대학도, 직업도, 작가 노릇도 노력해서 얻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나날들은 천수답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네요.

 

"인생은 그런 것인가?"

"정말로?"

 

성경 고린도전서 7:20~24의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의 성경을 읽을 때 딱 잘라서 23~24절만 많이 봐 왔는데 앞 구절을 보니 부르심을 받은 자가 노예로 있을 때였군요.  노예로 살게 된 것에 대해서 마음 쓰지 말라고 합니다. 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따르라 합니다.

노예로 부르심을 받았을지라도 마음 쓰지 말아라.
중요한 것은.. 너는 주님께 속한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값으로 치렀고, 사람의 노예가 아니다.
너의 처지와는 상관이 없다. 그때의 처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있어라.

성경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면 삶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 피할 수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