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이 대단한 상을 받았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의심없이 책을 뽑아들었다.
열린마음으로 이 소설을 생각해보니 몇가지 기억에 남는 부분이 생긴다. 그 기억들은 끔찍하기도 하다.
남편이 아내와 결혼하기 전, 후 아내에 대한 석연치 않은 태도는 그가 아내를 사랑하는지 의심스럽다. 누구나 배우자를 선택하게 될 때는 그 관계가 두 사람에게는 특별한 것인데 이 커플은 너무 그저그렇다. 결혼 동기는 아내가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존감이 지극히 건전하지 않은 한 남자의 왜곡된 결혼관이다. 아내는 재미없고 귀찮았다. 결혼 5년차부터 아내는 이상하게 변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지 결혼관에 대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채식하는 이유가 꿈을 꾸었기 때문이라는 애매한 대답... "꿈꿔서"
꿈 속에서 내가 죽였는지 .. 내가 죽었는지... 이런 대사들.
이유가 애매한 채식동기와 채식방법,
채식이라기보다는 동물성 단백질 자체를 거부한다.
흑염소를 넣은지 모르고 먹었던, 한약을 넣고 달인 액기스를 토해버렸다.
영혜의 정신적으로 문제 있어보이는 행동들. 노브라에 상의 탈의, 덥지도 않은데 벗은 이유가 "더워서"
가족들의 걱정어린 질문에 성의없어 보이는 대답들.
육정으로서 사랑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강압과 폭력.
다문 입에 강제로 욱여 넣는 끈끈한 액체가 질질 흐르는 탕수육. 범벅이 되었을 얼굴. 이빨을 닫아버린 입.
가족과 어린 자녀들 앞에서 벌어지는 뜬금없는 자해. 붉은 피.
병원에서 상의를 벗은 채 아내의 오른손에 쥐어진 붉은 선혈이 선명한 작은 동박새 한마리.
글로 묘사되는 각 장면별 이미지가 선명하게 자극적이다.
아내 영혜는 치유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받은 것 같다.
해괴한 추상미술작품을 마주했을 때 오는 당혹감 같은 느낌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미술이나 내용이 지나치게 심오한 작품을 볼 때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차라리 그림을 그리지 말고 책을 쓰지....'
이 소설은 글이니 대신 그림을 그리라 할 수도 없고... ^^
그러나 마음을 닫으면 좋은 작품을 감상하기 어렵다.
만약 이 소설이 수상작이 아니었다면 그냥 덮고 말았을텐데
2016년 권위있는 맨부커 인터네셔널상을 받은 작품이니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두번 읽었다.
그러나,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다음 편 몽고반점과 나무불꽃에서는 영혜에 대한 입체적인 정보를 알게 된다. 여전히 채식의 이유는 알 수 없다. 각각의 단편소설인줄 알았던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은 서로 다른 작품이면서 한작품으로 읽혀졌다. 그 소설들은 각각 다른 채널과 다른 시간에 발표되었다. 처음 읽었던 채식주의자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장면에 아연실색했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소설 몽고반점에서는 형부의 시점에서, 나무불꽃에서는 언니의 관점에서 소설이 씌어진다.
나는 다만...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피곤하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다.
충격적인 잔상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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