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마지막 장을 만날 때까지 견디는 것뿐이다. 문장을 읽을 때 다음 문장을 추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야로슬라프의 민속음악과 공연에 관한 내용은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아서 어렵게 읽었다. 이 책의 맨 뒷장의 겉표지에 있는 서평 "우리 시대 어떤 작가도 필적할 수 없는 기교"라는 말은 이번 나의 독서에서는 감지되지 않았다. 아마도 번역서였기 때문에 원어 언어의 묘미를 살리기 어려워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문해력이 더욱 향상되길 바랄뿐이다. 다만 책을 끝까지 참고 읽으니 내용과 관계, 전체적인 입체감이 들어왔다. 줄거리는 인물별로 파악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p513
"모든 일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끝난다."
소설의 거의 마지막부분에 나오는 루드비크와 야로슬라프의 대화 내용이다. 인생은 이 책의 제목처럼 농담과도 같다는 말인 것 같다. 루드비크의 인생이 꼬이게 된 것도 농담 때문이었고, 그의 치졸한 복수도 어처구니 없게 끝난다. 복수는 바로 그때하는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복수가 아니라고 되뇌였다. 루드비크의 처음 사랑한 여자 마르케타는 농담으로 실패하고 두번째 연인 루치에도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허무하게 끝난다. 세번째 여자는 헬레나. 자신을 제명한 제마네크의 아내이다. 그는 제마네크에게 치졸한 복수인 헬레나를 욕보이는 것이었는데 흐물해진 복수의 칼날은 실소하게 한다. 헬레나의 자살 해프닝도 독약으로 오해한 변비약을 삼킨 것도 농담같다. 남편 제마네크의 대담한 외도와 진심 사랑하게된 연인으로부터의 배신으로 또다른 젊은 정부의 진통제를 삼키고 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것은 독약이 아니라 변비약을 수치스럽게 생각한 젊은 정부가 약통의 이름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유서를 쓰고 약을 삼키고 화장실로 달려가 아픈배를 쥐어짜고 있을 때 충격적인 유서를 발견한 연인인 두남자는 화장실에서 똥질하는, 게다가 헝클어진 머리에 다리까지 내려간 팬티로 걸음을 뒤뚱거리며 소리지르는 헬레나를 목격했다. 블랙코메디 같다. 독실한 크리스챤 코스트카의 불륜과정은 사악한 농담같이 느껴진다. 루치에의 처참한 인생은 신앙으로 회복되는 듯 했으나 코스트카와의 불륜과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고단하고 고달픈 누군가의 인생드라마를 관조하면서 피식 쓴웃음이 나온다. - 나오면 안되는 웃음, 남의 장례식에 가서 웃음이 나는 것 같은. - 자신의 가벼운 실수로 생겨난 복잡하거나 무거워진 삶의 행로는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농담일지도 모른다. 그런 농담은 받고 싶지 않다. 체제와 이념 아래 각 개인의 삶, 개인들 간의 관계까지 미치는 인생의 속박은 누구의 책임인가. 불완전한 제도와 사악해지는 종교의 원인이 단지 인간성의 한계때문이라고 말하기엔 심사숙고한 답변이 아니다.
재미있게 봤다. 책을 덮고 나니 학창시절에 읽어보지 못해서 숙제처럼 여겨졌던, 500페이지가 넘는 밀란쿤데라의 소설을 읽어낸 성취감도 꽤 있다. 그러나 굳이 읽어내려고 애쓸 일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다소 숙제처럼 읽지만 않았어도 훨씬 재밌게 읽었을 것이다. 책을 장기간에 걸쳐 손으로 쓰는 사람도 있는데 눈으로만 읽는 독자의 고충을 수고라고 볼 수 있나!? 이 소설은 당분간 어떤 잔상으로 남을 것 같다. 긍정적인 기대를 할지라도 인생은 그렇게 풀리지 않았다. 내 인생이 부정적으로 느껴지고 불안할지라도 인생의 행로는 때로 불안은 커녕 행복의 일로를 아무 댓가를 치루지도 않고 누릴 때도 종종 있다. 인생의 모든 일들의 이유과 필연성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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